아시아의 슬픈 역사 731부대 유적지
<日軍 第731部隊 罪證陳列館-치싼야오부뚜이> |
|
 |
9.18사변 후 일본관동군제731부대(日本關東軍第731部隊)에 대하여 일본제국주의자(日本帝
國主義者)들은 승승장구하면서 침략전쟁(侵略戰爭)을 부단(不斷)히 확대(擴大)하는 동시(同
時)에 미친 듯이 세균무기(細菌武器)를 연구제작하고 사용하여 수만명의 항일군민(抗日軍民)
을 참살하였다. 일본관동군(日本關東軍) 731부대는 일본육군참모본부(日本陸軍參謀本部)가
1932년 하얼빈에 건립한 세균부대이다. 본부는 최초에는 하얼빈시의 선화가(宣化街)일대에
설립되었고 세균실험공장은 흑룡강성 오상현의 배음하진(背蔭河鎭)지역에 설립되었는데 1936
년 이후 하얼빈시 남쪽으로 |
|
| 20km떨어진 평방진(平房鎭) 지역(地域)에 옮겨졌다. 그들은 서역
(鼠疫), 상한(傷寒), 이질(痢疾), 동상(凍傷), 탄저(炭疽), 결핵(結核)등 십여종의 세균을 연구제작하였고 또 세균전에 응용하였다. 특히 잔인한 것은 생체(生體) 실험이다. 1933년부터 1945년 8월까지 시험용으로 참살당한 중
국인 소련인 몽고인과 조선인은 무려 3천여명이나 되었다일본육군참모본부는 731부대를 건립하는 동시에 신경(장춘)에 100부대를 건
립하였다. 그들은 노구교사변(盧溝橋事變) 후 중국(中國)의 화북(華北), 화중(華中), 화남(華南)등 지역에
세균전부대를 건립하였다. 그 중 중요한 부대는 북평(북경)의 북지갑(北支甲) 제 1855부대, 남경(南京)의 “
영”자(“榮”字 )제 1644부대와 중국광주의 “파”자(“波 ”字)제 8046부대이다. 그 외 싱가폴에도 한
개의 세균전부대를 건립하였다. |
|
이러한 부대는 모두 방역급수부의 이름을 걸고 실질적으로는 세균전 부대를
건립하였다.이러한 부대는 모두 방역급수부(防疫給水部)의 이름을 걸고 실질적으로는 세균전 음모활동(細菌
戰陰謀活動)에 종사(從事)하였다. 남경(南京)의 1644부대만 보더라도 여러차례 731부대와 서로 합쳐서 녕파(寧波,) 금화(金華), 상덕(常德), 노동(魯東)등 지역(地域)에서 세균전을 실행(實行)하였다.
731부대는 그들의 진면모(眞面貌)를 감추기 위하여 동향부대(東鄕部隊)라는 이름을 사용하였고 그들이
생활하는 구역을 동향촌(東鄕村)이라고 불렀다. 일본(日本)은 투항하기 전 자신들의 죄증(罪證)을 없애기
위하여 일본관동군은 하얼빈에 설립되어있는 세균실험기지의 중요한 건축물과 시설을 전부 폭파시켜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역사는 덮어 감출 수 없는 것이다.
전쟁 후 반세기동안 우리는 731부대 죄증유지(罪證遺址) |
 |
|
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보호하는 동시에 대대적인 연구에 몰두해왔다. 여기에 수집된 많은 역사사진은 확실한 역사의
실물로서 일본제국주의의 죄행(罪行)을 여실히 폭로하였다.역사의 한계와 또한 우리의 닿는 힘이 부족하여 이번에 전시되는 자료는 충
분히 반영하지 못하였지마는 계속하여 연구하고 자료수집을 해야한다. 그러나 여기에 전시된 자료만으로도 일본이 우리를 침략할 때 세
균전을 진행한 만행을 충분히 알려 주었으며 철저한 증거로 남기에 족하다. 일본이 역사왜곡을 하고 있는 것을 막기 위한 좋은 교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지난 뼈저린 역사를 잊지 말고 앞으로 삶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전세계 국민과 우리의 자손후대로 하여금 역사의
교훈을 섭취하여 이러한 역사의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되겠다.
교통: 하얼빈 기차역에서 343번 버스를 타거나 아니며, 동력구(動力區-똥리취)에서 338번 버스를 하고 신장가(新疆街-씬쟝지에)에
서 내리시면 됩니다. |
|
 |